회사는 어쩌면 사람으로 만든 함수의 집합이었는지도 모른다
AI에게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요청 문장을 조금씩 바꾸다 보면 문득 프로그래밍에서 함수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요청한다.
“이 내용을 정리해줘.”
그런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조건을 추가한다.
무엇을 위한 결과물인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어떤 형식으로 출력해야 하는지, 무엇을 제외해야 하는지 하나씩 명확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요청은 이런 구조가 된다.
입력값 → 조건 → 처리 기준 → 출력 형식 → 검증 기준
거의 하나의 함수를 정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 사이의 일도 원래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리자는 사람마다 다른 함수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관리자는 모든 직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일을 맡기지 않는다.
경험이 적은 직원에게는 목표뿐 아니라 절차, 예시, 주의사항, 완료 기준까지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반대로 숙련된 직원에게는 훨씬 짧게 말해도 된다.
“이 문제를 정리해줘.”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줘.”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개별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영역 전체를 맡긴다.
“이 프로젝트 맡아줘.” “이 고객 맡아줘.” “이 사업 맡아줘.”
직원이 성장할수록 요청에 필요한 입력값은 줄어들지만, 처리할 수 있는 범위는 오히려 커진다.
좋은 직원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단계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 해석 → 필요한 정보 수집 → 작업 분해 → 실행 → 문제 수정 → 결과 검증 → 보고
상사는 그 내부 과정을 하나하나 지시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입력을 주었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는 신뢰가 생기면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다.
승진은 함수의 추상화 수준이 올라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승진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작은 작업을 수행한다.
기능 하나 → 프로젝트 하나 → 고객 하나 → 팀 하나 → 사업 영역 하나
위로 올라갈수록 업무의 단위가 커지고 요청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한다.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든 일을 직접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불완전한 요청을 받아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관리자가 된 이후에는 자신의 작업 능력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맡길지 판단하고, 각 사람에게 맞는 수준으로 요청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다시 일을 나누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자신이 하나의 좋은 함수가 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함수를 조합해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명장 밑에 좋은 장수가 많았던 이유
이 관점에서 보면 과거에 “명장 밑에 좋은 장수가 많다”는 말도 흥미롭게 해석할 수 있다.
좋은 지휘관은 모든 전투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각 장수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적절한 임무를 부여하며, 어느 정도까지 지시하고 어느 정도를 현장 판단에 맡겨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지휘관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좋은 관리자는 좋은 사람을 찾는 것뿐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AI를 쓰면서 조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AI를 사용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업무 방식을 배우는 동시에, 기존 인간 조직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는 점이다.
잘 만든 프롬프트는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더 반복되면 템플릿이 되고, 스킬이 되고, 워크플로가 되고, 결국 자동화된다.
사람 조직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한 번 설명했던 방법이 반복되면 업무 방식이 되고, 매뉴얼이 되고, 프로세스가 되고, 조직의 시스템이 된다.
결국 회사라는 것은 오랫동안 사람이라는 복잡한 함수를 조합해서 운영해온 시스템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은 AI와 달리 상식과 경험, 관계와 맥락을 이용해 빠진 입력값을 스스로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함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AI와 함께 일하다 보니 이제야 그 구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