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이 결정자라면, 문서도 그렇게 써야 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작업이 진행될 때마다 기록을 남긴다. 무엇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무엇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지를 적어두는 식이다. AI와 함께 일하다 보니 이런 기록은 점점 많아졌고, 그 기록을 쓰는 쪽도 읽는 쪽도 결국 나 혼자였다.

그런데 최근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이 기록들의 ‘작업자’가 아니라 ‘결정자’라는 것이다. 코드가 어떻게 짜였는지, 어떤 함수를 고쳤는지는 내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건 딱 하나 — 지금 내가 뭘 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걸 정하기 위한 선택지와 추천이다. 그런데 기존 기록들은 기술적인 설명이 맨 앞에 나오고, 정작 내가 결정해야 할 부분은 저 아래 파묻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앞으로 새로 쓰는 기록의 형식을 바꾸기로 했다. 맨 위에는 그림 한 장과 쉬운 말로 된 요약을 두고, 그 아래에 “지금 정할 것 — 선택지, 추천, 이유”를 적고, 그다음에 “이미 정한 것과 그 이유”, “버리기로 한 선택지와 그 이유”, “아직 정하지 않은 것”, “다음 행동”을 순서대로 둔다. 기술적인 세부 내용은 이 모든 것 다음, 맨 아래로 내려서 필요할 때만 펼쳐보게 했다.

바꾸면서 고민했던 지점은 하나였다. 이미 쌓여 있는 기존 기록들도 전부 이 형식으로 한꺼번에 바꿀까? 답은 ‘아니다’였다. 되돌리기 어려운 일괄 변경보다는, 새로 쓰는 기록부터 적용하고 오래된 기록은 필요할 때 하나씩 손보는 쪽을 택했다. 작은 결정이지만, 형식을 바꾸는 일 자체도 결국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 리스크가 큰 방향보다는 되돌릴 수 있는 방향으로.

결국 이건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에 가깝다. 글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기준으로 짜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읽는 사람이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라면, 결정에 필요한 것을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