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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직원이 아니라, AI 인프라를 만드는 시대

사람들은 AI를 이야기하면서 자동화, 비서, AI 직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것들이 결국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AI를 직원처럼 바라보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기술로 보이지만, 인프라로 바라보면 조직의 생산 능력 자체를 구축하는 기술로 보인다.

산업혁명에서 일어났던 변화

지난 글에서는 장인에서 산업화로 넘어간 흐름을 함수가 나뉘는 과정으로 봤다. 이번에는 같은 흐름을 누가 생산 능력을 소유하는가라는 눈으로 본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생산의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기계화와 생산라인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장인이 수행하던 작업의 상당 부분이 기계와 공정으로 이전되었다.

숙련된 장인이 없어도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제품 가격도 낮아졌다.

생산 능력의 중심이 개인의 숙련에서 기업이 소유한 시스템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인의 자리는 줄어들었고, 생산 시스템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의 중요성은 커졌다.

지금 AI 시대에 벌어지는 일도 이와 유사해 보인다.

코딩, 디자인, 게임 개발 등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던 영역을 AI가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다. 단순한 작업 지원을 넘어 기획, 실행, 검증, 운영까지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블루칼라 영역에서 일어났던 숙련의 자동화가 화이트칼라 영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숙련은 누구의 자산이 되는가?

개발자는 다른 직업에 비해 이직이나 독립에 유리한 면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더라도 습득한 프로그래밍 기술과 문제 해결 능력을 다른 회사에서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구축된 AI 인프라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수행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직원은 회사의 AI 시스템을 이용해 높은 생산성을 얻겠지만, 그 시스템을 퇴사할 때 가져갈 수는 없다.

오히려 직원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AI 시스템을 개선할수록 기업의 생산 능력이 축적된다.

생산라인의 작업자가 공정을 개선하더라도 그 생산라인은 기업의 소유인 것과 비슷하다.

AI 시대에는 개인의 숙련뿐 아니라 생산 시스템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가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개인이 공장과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어려웠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개인도 상당한 생산 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나 역시 AI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프라를 거의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 기업의 서비스를 구독하고, 서비스마다 별도로 관리하고, 각 서비스가 제공하는 기능에 맞춰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LSOS와 여러 도구, AI 하네스를 직접 구축하면서 필요한 기능을 만들고 연결하고 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해결하는 기능을 추가한다. 그러면 그 기능은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기능만이 아니라 기록도 그렇게 쌓인다.

예전에 만든 사진 분석 서비스에서, 서버가 해외 지역에서 실행되는 바람에 AI 서비스가 요청을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 한 번 고쳤지만 응답이 느려졌고, 더 나은 방법으로 바꾸기까지 석 달 가까이 걸렸다.

그 과정을 기록해 두었더니, 다음에 만든 견적서 앱은 처음부터 서버를 국내에서 실행하는 설정을 넣고 시작했다.

얼마 뒤 운영 중인 다른 서비스에서 같은 오류가 자주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AI가 예전 기록을 찾아 읽었다. 이미 실패했던 방법은 건너뛰고 그날 바로 고쳤고, 실패율은 27%에서 1.2%로 줄었다.

프로덕트를 만들면서 인프라가 개선되고, 개선된 인프라를 활용해 다음 프로덕트를 더 쉽게 만드는 순환이 생긴 것이다.

단순히 AI를 이용해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일을 할수록 경험뿐 아니라 생산 능력 자체가 자산으로 축적된다.

다시 작아지는 생산 단위

기업이 더 많은 제품을 만들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면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조직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AI가 개발, 디자인, 마케팅, 운영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할 필요는 없어진다.

과거에는 기업이 커져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인프라가 고도화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될 수 있다.

그 결과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이 다룰 수 있는 제품의 영역, 복잡도, 완성도, 인당 생산량의 상한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매출이나 이익이 자동으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경쟁자들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 확보, 유통, 신뢰, 사업 운영 역량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동화, 비서, AI 직원 그리고 인프라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를 사용하는 방식에도 단계가 있다.

  • 도구: 개별 작업을 도와준다.
  • 자동화: 반복되는 작업을 대신 수행한다.
  • 비서: 여러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한다.
  • AI 직원: 특정 역할에 해당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 인프라: 이 모든 기능을 연결하고 축적해 지속적인 생산 능력을 제공한다.

반드시 이 순서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 직원의 숫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어떤 일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AI를 사용한다고 해서 기존의 인간 조직을 그대로 복제할 필요도 없다.

지난 글에서 다뤘듯, 사람의 직무 구분은 인간의 능력과 조직 관리의 제약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AI를 활용한다면 업무를 기능 단위로 나누고 다시 연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AI는 인프라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이고, 인프라는 그 요소들이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는 것

물론 개인이 AI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해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은 아니다.

AI 모델, 클라우드, 외부 API, 컴퓨팅 자원에는 여전히 의존한다.

하지만 외부 기업이 설계한 업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외부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업무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면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그만큼 근무시간이 줄어들거나 보상이 증가한다는 보장은 없다.

반면 자신의 사업이라면 늘어난 생산 능력을 매출 확대에 사용할 수도 있고,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으며,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중요하게 생각해 온 시간과 자유도 여기에 연결된다.

결국 AI 시대에 개인 사업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혼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생산 시스템을 소유하고, 그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얻는 성과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장인의 숙련을 공장과 생산라인으로 이전했다.

AI 혁명은 전문가의 지식과 판단을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인프라로 이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인도 그 인프라의 일부를 직접 구축하고 소유할 수 있다.

어쩌면 AI 시대의 중요한 변화는 AI 직원이 몇 명의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 한 명이 얼마나 큰 생산 인프라를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가.

그것이 앞으로 기업의 형태와 개인의 경제적 위치를 바꾸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